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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6.25 22:43
로스쿨제도의 본질과 사법시험 존치 논란에 대한 짧은 생각
I. 서문
안녕하세요, Gomdolius입니다.
원래 이런 글은 커스텀 펌웨어나 IT를 다루는 커뮤니티에는 다소 어울리지 않고, 필연적으로 약간이나마 정치적 색채를 띨 수밖에 없는지라 잘 쓰지 않으려 합니다만, 로스쿨을 다니고 있는 사람으로서 최근의 사법시험 존치 논란과 관련하여 짧은 생각을 적어보고자 합니다. 하지만 많이들 생각하는 '희망의 사다리', '비용' 과 같은 관점에서 한발 물러나, 좀더 '평등'과 '복지'의 관점에서 바라보고자 합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이 글은 로스쿨 제도를 옹호하고 사법시험의 완전폐지를 주장하는 글입니다. 그러나 로스쿨 학생으로서의 이해관계를 떠나서 평소에 생각하던, 심지어 제가 법과대학(학부)에 있을 때에도 품었던 생각을 털어놓고, 이를 통해 국가와 사회가 '평등'의 가치를 구현함에 있어서 어떤 스탠스를 취함이 바람직한지 한번 생각하고 스스로 정리해 보는 계기를 가지고 싶습니다.
II. 실질적 평등과 형식적 평등
평등을 나누는 기준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먼저 두 가지 기준을 제시해 보고 싶습니다. 평등이 실질적인지 아니면 형식적인지, 그리고 결과의 평등인지 기회의 평등인지. 여기서 우리가 추구하는 평등은 일단 '결과의 평등'이 아닌, '기회의 평등'입니다. 이는 우리 헌법 제11조(평등권)의 해석에 있어서 일치된 의견입니다. 이 중에서도 우리나라는 '형식적'이 아닌, '실질적 기회의 평등'을 추구합니다. 그렇다면 이제 '실질적 기회의 평등'은 무엇에 의하여 구현되는 것인가를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다소 의외라고 생각하실지도 모르지만, 평등의 핵심은 개인이 너무 큰 리스크를 지지 않고, 사회가 힘을 모아 모두의 리스크를 약간씩 떠안아 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혜택을 받은 개인은 사회 속에서 모두를 위해 다시 나눔으로써 거대한 선순환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이것이 평등의 핵심적인 열쇠입니다.
실질적으로 평등한 사회에서는 개인은 (물론 상황에 따라, 예를 들면 애인이 없다든지...하면 외로울 수도 있지만) 보통 도저히 참을 수 없을 만큼, 살 수 없을 만큼 외롭지는 않습니다. 사회와 제도가 개인을 든든히 받쳐 주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개인은 사회와 제도의 든든한 지원 하에 결과를 두려워하지 않고 원하는 것에 도전할 수 있습니다. 그 결과가 처참한 실패더라도, 사회와 제도가 따스한 손을 내밀어 일으켜 주고, 최소한 성공적인 결과로 이르는 길을 손가락으로 가리켜 주고, 등을 두드려 준다면 이는 아름다운 일이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실질적으로 평등한 사회에서 개인과 사회는 같이 달리는 동반자입니다. 어디서 많이 들어 본 이야기 같지 않습니까? 잘 생각해 보면 우리들이 '복지' 라고 부르는 것이 사실 이런 것 아니었습니까? 복지는 단지 돈을 쥐어주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그 수단은 돈이 될 수 있지만, 그 본질은 결국 기회를 원하는 자에게 성공의 방향을 가르쳐 주고, 손을 잡아 일으켜 주고, 숨이 차서 쓰러질 것 같을 때 옆에서 손을 잡고 다시 달려 주는 것입니다. 구보에서 낙오할 것 같은 전우의 군장을 내가 대신 메 주고, 자신도 힘들고 지쳐서 쓰러질 것 같지만, 끊임 없이 힘내라고, 포기하지 말라고, 고지가 저 눈 앞이라고 소리치면서, 목표 지점까지 옆에서 같이 달려 주는 것입니다.
하지만 형식적으로 평등한 사회에서는 개인과 사회는 결코 동반자가 아닙니다. 개인이 사회를 상대로 끝없이 힘겨운 투쟁을 해 나가거나, 사회가 그 사회의 이익을 위해 개인의 대척점에 서서 개인에게 시련을 부여합니다. 이런 사회에서 개인은 어쩔 수 없이 다른 개인과 연대하지만, 그리고 그 연대는 때로 끈끈하고 정겨울 수 있지만, 제도로 뒷받침되는 연대가 아니므로 언젠가는 어쩔 수 없이 한계에 다다르게 됩니다. 결국 개인은 평등이라는 이름 하에 철저하게 소외되고, 결국 오로지 자기 자신의 힘으로 사회가 내세운 벽을 뛰어 넘으려 할 수밖에 없게 됩니다.
이러한 체제 하에서 사회는 개인을 심판하고, 평가하며, 기준에 미달하면 그대로 내치고, 그 개인이 실패한 이유는 '노력'과 '의지'가 부족해서라고 냉정하게 말해 버립니다. 그러면서도 그러한 체제가 '평등을 보장하는' 공정한 체제라고 주장하기를 서슴지 않습니다. 실제로 그 소외된 개인들은 그러한 차가운 현실에서, 게다가 사실은 불평등한 출발선에서 불공정한 경쟁을 하고, 너무나도 당연스럽게 예정된 실패의 길을 걷고, 결국 낙오자라는 평가를 받습니다. 흔히 여러분들이 말하는 '노오력이 부족하다!' 라는 것이지요. 그러나 개인적인 수단으로 현실을 따뜻하게 만들 수 있고, 다른 사람들보다 유리한 고지에서 출발하도록 여건이 갖추어진 사람들은, 소외된 사람들보다 훨씬 적은 리스크와 훨씬 적은 노력으로 그러한 불평등하면서도 냉혹한 경쟁에서 승리하고, 결국 승리자가 됩니다. 그리고 그 체제의 일부가 되어서 '낙오자들'을 평가하는 주체가 됩니다.
너희들은 의지가 부족해. 너희들은 노력을 충분히 하지 않았어. 너희가 열심히 하지 않은 것을 왜 우리 탓을 하지? 우리가 너희들과 같이 달려 줄 필요는 없는 거잖아. 모든 것은 너희 자신의 탓이야. 아프니까 청춘이지. 원래 그런거야... 퍽이나 그렇겠습니다.
III. 사법시험 제도의 한계
사법시험 존치에 관한 이번 논란도, 사실 그 (슬슬 진부해지기 시작하는) '희망의 사다리' 라는 논리를 살짝 걷어내면 결국 마찬가지입니다. 사법시험은 개인이 어떤 길을 걸어서 합격할 수 있는 실력을 갖추었는지 그 과정은 전혀 묻지도 따지지도 않습니다. 사법시험은 기본적으로 사법연수원생 선발시험입니다. 그 시험에 합격하려면 그 사회, 아니 '제도'가 원하는 높은 수준을 '스스로' 갖추어야 합니다. 그리고 '스스로' 그 높은 수준을 달성하는 일은 (물론 사람에 따라 도전정신을 고취시키기도 하지만) 정말로 고통스럽고 험난한 길입니다. 사회와 제도는 그 길을 걸어가는 개인을 신경쓰지 않습니다. 마지막 관문에서 그냥 평가하고, 점수를 매길 뿐입니다. 알아서 실력을 키워 와. 마음에 들면 널 써 줄게. 내 마음에 안 들면? 그건 내 알 바 아니지. 넌 그냥 혼자 망하는거야. 내 책임 아니라니까?
어떤 제도를 희망의 사다리라고 부를 수 있으려면 그 밑바닥에 있는 사람이 꼭대기까지 올라갈 수 있도록 맨 아래부터 발 디딜 곳이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아래부분은 전혀 없고 맨 위에만 가로봉이 있다면 이것은 사다리가 아닙니다. 우리는 보통 이렇게 생긴 물건을 '철봉' 이라고 부릅니다. 철봉은 딛고 올라가라고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힘만으로 턱걸이를 하라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도 날이 갈수록 점점 높아지는 철봉입니다. 왜냐구요? 사회가 발전하고, 법이 개정되고, 판례와 법이론도 점점 늘어가니까, 철봉의 높이도 자연스럽게 높아지는 것이지요. 이제는 팔힘이 약한 사람이 그 철봉에서 제대로 턱걸이를 하려면 전문 트레이너의 도움이 사실상 반드시 필요한 지경에 이르게 되었고, 트레이너의 도움은 결코 저렴하지 않습니다.
철봉은 너무 가혹한 평가인가요? 백번 양보해서 사다리라고 인정해 봅시다. 하지만 사법시험을 준비해 보신 분들은 누구라도 그 사다리가 온통 가시투성이라는 점을 부정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 가시는 굉장히 촘촘하고, 아래에서 올라가는 사람은 위에 어디에 가시가 있는지 알기 힘들기 때문에, 가시를 피해서 사다리를 잡으려면 역시 트레이너 비슷한 게 필요합니다. 예전에는 아마 'H법학원' 이라는 트레이너가 참 유명했던 것 같은데 지금은 잘 모르겠군요. 여튼 수많은 사람들이 그 가시에 찔려서 그 사다리에서 떨어집니다. 비교적 아래쪽에서 떨어지면 오히려 낫습니다. 하지만 높은 곳에서 떨어지면 그 추락으로 인한 상처는 너무 큽니다.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이 뭔지 아십니까? 철봉이든 가시투성이 사다리든, 그것을 놓은 주체가 바로 국가라는 점입니다.
실질적 기회의 평등을 추구하는 국가는, 원칙적으로 철봉을 놓아서도 안 되고, 가시투성이 사다리를 놓아서도 안 됩니다. 그리고 그 철봉이나 사다리 위에서 눈물을 흘리며 힘겹게 도전하다 떨어지는 사람들을 낙오자로 평가해서는 더더욱 안 됩니다. 지난 6월 23일, 100분토론에서 사법시험 존치 쪽 입장 토론자가 국가는 자유주의적 관점에서 국민이 파멸적인 선택을 하더라도 이를 보장해야 한다는 발언을 했습니다. 그 말은 맞습니다. 하지만 그 파멸에 이르는 길을 국가가 제공하였다면, 국가는 일종의 '보증인적 지위'에 서게 되어 자신이 초래한 (또는, 초래한 것과 마찬가지인) 국민의 파멸적 선택을 저지하거나 적어도 보정할 의무를 지게 됩니다. 혹자는 여기에 반대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반대하는 입장에서도 국가가 국민에게 어떠한 길을 제시할 때에는 그것이 적어도 어느 정도는 안전하여야 한다는 점에는 동의할 것입니다.
사법시험제도는 결국 이러한 측면에서 보면, 형식적인 평등을 내세우면서, 국가가 국민에게 아주 큰 리스크를 떠넘기고, 불공정한 경쟁 후에 낙오한 사람들에 대해 '네가 선택한 길이잖아!' 라고 말하며 내치는 제도입니다. (여기서 '왜 불공정한가?' 라는 의문을 가지는 분들은, 최근 20년간 고졸 출신 사법시험 합격자가 과연 몇명인지, 그 사람들이 총 합격자 대비 몇 퍼센트인지 한번 확인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합격자 중 흔히 '부유층'에 속하는 집안의 자녀들이 차지하는 비율과, 서울 상위권 대학 출신자의 비율 또한 확인해 보시기 바랍니다. 사법시험은 아까도 말했듯이 더 이상 공정한 경쟁이 아니고, 이것을 공정하다고 말하는 분들 중 절대다수는 사실 속으로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사법시험을 옹호하기 위해 그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일종의 불편한 진실이라 하겠습니다) 과거에는 분명 정말로 평등한 제도였고 희망의 사다리였지만, 이제는 제도의 본질 자체가 그렇지 않게 변해 버렸습니다.
IV. 로스쿨 제도의 본질과, 그리고 그 나아갈 길에 대하여
법학의 공부는 힘겨운 오래달리기입니다. 물론 로스쿨은 국가에서 운영하는 것은 아니지만, 국가가 법률로 정한 '제도'가 법조인을 꿈꾸는 사람들과 함께 손을 잡고 달리면서, (일정한) 합격 커트라인 시간 내에 목표지점에 도달하도록 옆에서 이끌어 주는 것입니다. 하지만 대신 달려 주는 것은 아닙니다. 이것이 바로 평등한 리스크 분담이고, '기회의 평등'입니다. 즉 현재 로스쿨 제도는 그 본질이 '법조인을 꿈꾸는 사람들의 리스크를 사회가 같이 떠안는 제도'입니다. 희망의 사다리가 있다고 한다면 오히려 바로 이런 것이겠지요.
로스쿨 제도를 비판하는 사람들의 논지는 물론 여러가지 있지만 결국 그 로스쿨이라는 '트랙'에 1) 오르는 비용이 너무 높다, 2) 달릴 준비가 안 되어 있는 자가 편법으로 올라온다 이 두가지로 압축됩니다. 로스쿨 제도를 옹호하는 사람들은 비용에 대해서는 주로 장학금으로 커버된다고 반론합니다.
사실 저는 저 반론이 타당하다고 생각합니다만 다소 부족하다고도 생각하고, 상당히 많은 분들도 그렇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맞습니다. 비용은 앞으로 더욱 줄여 나가야 합니다. 등록금을 낮춰서 더 많은 사람들이 기회를 제공받아야 합니다. 장학금 비율도 높여서 가난한 학생들이 누구나 법조인이 될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더 충실하게 '실질적 기회의 평등'을 구현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비용의 문제는 국가에서 나섬으로써 해결할 수도 있고, 각 대학들이 재정건전성을 높이고 쓸데없는 비용을 지출하지 않음으로써 해결할 수도 있고, 여튼 가능성이 무궁무진합니다. 사회의 중요한 인재를 양성하는 로스쿨에 왜 '반값 등록금'이 실현되어서는 안됩니까? 당연히 되어야 합니다.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장학 제도도 더욱 늘려야 합니다.
그리고 공정성에 대해서는, 그런 '편법'으로 올라와서 달리는 사람들은 결국 중간에 달리기를 포기하고 나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트랙 자체가 경사가 높아서 결코 쉽지 않으니까요. 이미 작년부터 학사엄정화 정책이 시행되어 공부를 게을리하거나 아예 준비가 안된 학생들은 학사경고를 피할 수 없으므로 결국 학교에서 쫓겨나게 되어 있으며, 로스쿨의 중간시험과 기말시험은 정말로 부정이 개입될 여지가 사실상 없을 정도로 학생들이 민감하게 반응하기 때문에 (조금의 부정이라도 개입되었다는 정황이 포착되면 학생들이 '정말로' 들고일어날 준비가 언제든지 되어있습니다) 더욱 버틸 수 있을 리가 없습니다. 입학 또한 객관적 평가지표를 좀더 강화하면 충분히 공정해질 수 있으며, 마지막으로 변호사시험의 필터링 기능 또한 무시할 수 없습니다. (변호사시험의 점수를 공개함으로써 공정성을 더 확보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는 하지만, 이것이 과연 궁극적으로 이익인지 손해인지는 저로서는 확답하기 어렵습니다)
V. 결어
평등은 정의와 굉장히 밀접한 관계를 가집니다. 정의란 주로 '같은 것을 같게, 다른 것을 다르게 대우하는 것' 이라고 일컬어지는데, 이 안에는 결국 평등의 가치가 매우 진하게 녹아 있습니다. 형식적 평등을 내세우며 거짓된 희망을 제시하는 국가는 정의롭지 못한 것입니다. 우리가 복지를 사회정의의 한 실현수단으로 취급하는 것도 바로 평등과 정의가 직결되기 때문입니다. 로스쿨 제도는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실질적으로' 평등한 제도이며, 앞으로 조금 더 개선되고 정착된다면 더욱 정의롭고 평등한 법조계를 구축하는 데 아주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할 것입니다. 이제는 철봉을 치울 때가 되었습니다.
긴 글 읽어 주셔서 고맙습니다.
좋은 밤 되십시오.
안녕하세요, Gomdolius입니다.
원래 이런 글은 커스텀 펌웨어나 IT를 다루는 커뮤니티에는 다소 어울리지 않고, 필연적으로 약간이나마 정치적 색채를 띨 수밖에 없는지라 잘 쓰지 않으려 합니다만, 로스쿨을 다니고 있는 사람으로서 최근의 사법시험 존치 논란과 관련하여 짧은 생각을 적어보고자 합니다. 하지만 많이들 생각하는 '희망의 사다리', '비용' 과 같은 관점에서 한발 물러나, 좀더 '평등'과 '복지'의 관점에서 바라보고자 합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이 글은 로스쿨 제도를 옹호하고 사법시험의 완전폐지를 주장하는 글입니다. 그러나 로스쿨 학생으로서의 이해관계를 떠나서 평소에 생각하던, 심지어 제가 법과대학(학부)에 있을 때에도 품었던 생각을 털어놓고, 이를 통해 국가와 사회가 '평등'의 가치를 구현함에 있어서 어떤 스탠스를 취함이 바람직한지 한번 생각하고 스스로 정리해 보는 계기를 가지고 싶습니다.
II. 실질적 평등과 형식적 평등
평등을 나누는 기준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먼저 두 가지 기준을 제시해 보고 싶습니다. 평등이 실질적인지 아니면 형식적인지, 그리고 결과의 평등인지 기회의 평등인지. 여기서 우리가 추구하는 평등은 일단 '결과의 평등'이 아닌, '기회의 평등'입니다. 이는 우리 헌법 제11조(평등권)의 해석에 있어서 일치된 의견입니다. 이 중에서도 우리나라는 '형식적'이 아닌, '실질적 기회의 평등'을 추구합니다. 그렇다면 이제 '실질적 기회의 평등'은 무엇에 의하여 구현되는 것인가를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다소 의외라고 생각하실지도 모르지만, 평등의 핵심은 개인이 너무 큰 리스크를 지지 않고, 사회가 힘을 모아 모두의 리스크를 약간씩 떠안아 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혜택을 받은 개인은 사회 속에서 모두를 위해 다시 나눔으로써 거대한 선순환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이것이 평등의 핵심적인 열쇠입니다.
실질적으로 평등한 사회에서는 개인은 (물론 상황에 따라, 예를 들면 애인이 없다든지...하면 외로울 수도 있지만) 보통 도저히 참을 수 없을 만큼, 살 수 없을 만큼 외롭지는 않습니다. 사회와 제도가 개인을 든든히 받쳐 주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개인은 사회와 제도의 든든한 지원 하에 결과를 두려워하지 않고 원하는 것에 도전할 수 있습니다. 그 결과가 처참한 실패더라도, 사회와 제도가 따스한 손을 내밀어 일으켜 주고, 최소한 성공적인 결과로 이르는 길을 손가락으로 가리켜 주고, 등을 두드려 준다면 이는 아름다운 일이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실질적으로 평등한 사회에서 개인과 사회는 같이 달리는 동반자입니다. 어디서 많이 들어 본 이야기 같지 않습니까? 잘 생각해 보면 우리들이 '복지' 라고 부르는 것이 사실 이런 것 아니었습니까? 복지는 단지 돈을 쥐어주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그 수단은 돈이 될 수 있지만, 그 본질은 결국 기회를 원하는 자에게 성공의 방향을 가르쳐 주고, 손을 잡아 일으켜 주고, 숨이 차서 쓰러질 것 같을 때 옆에서 손을 잡고 다시 달려 주는 것입니다. 구보에서 낙오할 것 같은 전우의 군장을 내가 대신 메 주고, 자신도 힘들고 지쳐서 쓰러질 것 같지만, 끊임 없이 힘내라고, 포기하지 말라고, 고지가 저 눈 앞이라고 소리치면서, 목표 지점까지 옆에서 같이 달려 주는 것입니다.
하지만 형식적으로 평등한 사회에서는 개인과 사회는 결코 동반자가 아닙니다. 개인이 사회를 상대로 끝없이 힘겨운 투쟁을 해 나가거나, 사회가 그 사회의 이익을 위해 개인의 대척점에 서서 개인에게 시련을 부여합니다. 이런 사회에서 개인은 어쩔 수 없이 다른 개인과 연대하지만, 그리고 그 연대는 때로 끈끈하고 정겨울 수 있지만, 제도로 뒷받침되는 연대가 아니므로 언젠가는 어쩔 수 없이 한계에 다다르게 됩니다. 결국 개인은 평등이라는 이름 하에 철저하게 소외되고, 결국 오로지 자기 자신의 힘으로 사회가 내세운 벽을 뛰어 넘으려 할 수밖에 없게 됩니다.
이러한 체제 하에서 사회는 개인을 심판하고, 평가하며, 기준에 미달하면 그대로 내치고, 그 개인이 실패한 이유는 '노력'과 '의지'가 부족해서라고 냉정하게 말해 버립니다. 그러면서도 그러한 체제가 '평등을 보장하는' 공정한 체제라고 주장하기를 서슴지 않습니다. 실제로 그 소외된 개인들은 그러한 차가운 현실에서, 게다가 사실은 불평등한 출발선에서 불공정한 경쟁을 하고, 너무나도 당연스럽게 예정된 실패의 길을 걷고, 결국 낙오자라는 평가를 받습니다. 흔히 여러분들이 말하는 '노오력이 부족하다!' 라는 것이지요. 그러나 개인적인 수단으로 현실을 따뜻하게 만들 수 있고, 다른 사람들보다 유리한 고지에서 출발하도록 여건이 갖추어진 사람들은, 소외된 사람들보다 훨씬 적은 리스크와 훨씬 적은 노력으로 그러한 불평등하면서도 냉혹한 경쟁에서 승리하고, 결국 승리자가 됩니다. 그리고 그 체제의 일부가 되어서 '낙오자들'을 평가하는 주체가 됩니다.
너희들은 의지가 부족해. 너희들은 노력을 충분히 하지 않았어. 너희가 열심히 하지 않은 것을 왜 우리 탓을 하지? 우리가 너희들과 같이 달려 줄 필요는 없는 거잖아. 모든 것은 너희 자신의 탓이야. 아프니까 청춘이지. 원래 그런거야... 퍽이나 그렇겠습니다.
III. 사법시험 제도의 한계
사법시험 존치에 관한 이번 논란도, 사실 그 (슬슬 진부해지기 시작하는) '희망의 사다리' 라는 논리를 살짝 걷어내면 결국 마찬가지입니다. 사법시험은 개인이 어떤 길을 걸어서 합격할 수 있는 실력을 갖추었는지 그 과정은 전혀 묻지도 따지지도 않습니다. 사법시험은 기본적으로 사법연수원생 선발시험입니다. 그 시험에 합격하려면 그 사회, 아니 '제도'가 원하는 높은 수준을 '스스로' 갖추어야 합니다. 그리고 '스스로' 그 높은 수준을 달성하는 일은 (물론 사람에 따라 도전정신을 고취시키기도 하지만) 정말로 고통스럽고 험난한 길입니다. 사회와 제도는 그 길을 걸어가는 개인을 신경쓰지 않습니다. 마지막 관문에서 그냥 평가하고, 점수를 매길 뿐입니다. 알아서 실력을 키워 와. 마음에 들면 널 써 줄게. 내 마음에 안 들면? 그건 내 알 바 아니지. 넌 그냥 혼자 망하는거야. 내 책임 아니라니까?
어떤 제도를 희망의 사다리라고 부를 수 있으려면 그 밑바닥에 있는 사람이 꼭대기까지 올라갈 수 있도록 맨 아래부터 발 디딜 곳이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아래부분은 전혀 없고 맨 위에만 가로봉이 있다면 이것은 사다리가 아닙니다. 우리는 보통 이렇게 생긴 물건을 '철봉' 이라고 부릅니다. 철봉은 딛고 올라가라고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힘만으로 턱걸이를 하라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도 날이 갈수록 점점 높아지는 철봉입니다. 왜냐구요? 사회가 발전하고, 법이 개정되고, 판례와 법이론도 점점 늘어가니까, 철봉의 높이도 자연스럽게 높아지는 것이지요. 이제는 팔힘이 약한 사람이 그 철봉에서 제대로 턱걸이를 하려면 전문 트레이너의 도움이 사실상 반드시 필요한 지경에 이르게 되었고, 트레이너의 도움은 결코 저렴하지 않습니다.
철봉은 너무 가혹한 평가인가요? 백번 양보해서 사다리라고 인정해 봅시다. 하지만 사법시험을 준비해 보신 분들은 누구라도 그 사다리가 온통 가시투성이라는 점을 부정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 가시는 굉장히 촘촘하고, 아래에서 올라가는 사람은 위에 어디에 가시가 있는지 알기 힘들기 때문에, 가시를 피해서 사다리를 잡으려면 역시 트레이너 비슷한 게 필요합니다. 예전에는 아마 'H법학원' 이라는 트레이너가 참 유명했던 것 같은데 지금은 잘 모르겠군요. 여튼 수많은 사람들이 그 가시에 찔려서 그 사다리에서 떨어집니다. 비교적 아래쪽에서 떨어지면 오히려 낫습니다. 하지만 높은 곳에서 떨어지면 그 추락으로 인한 상처는 너무 큽니다.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이 뭔지 아십니까? 철봉이든 가시투성이 사다리든, 그것을 놓은 주체가 바로 국가라는 점입니다.
실질적 기회의 평등을 추구하는 국가는, 원칙적으로 철봉을 놓아서도 안 되고, 가시투성이 사다리를 놓아서도 안 됩니다. 그리고 그 철봉이나 사다리 위에서 눈물을 흘리며 힘겹게 도전하다 떨어지는 사람들을 낙오자로 평가해서는 더더욱 안 됩니다. 지난 6월 23일, 100분토론에서 사법시험 존치 쪽 입장 토론자가 국가는 자유주의적 관점에서 국민이 파멸적인 선택을 하더라도 이를 보장해야 한다는 발언을 했습니다. 그 말은 맞습니다. 하지만 그 파멸에 이르는 길을 국가가 제공하였다면, 국가는 일종의 '보증인적 지위'에 서게 되어 자신이 초래한 (또는, 초래한 것과 마찬가지인) 국민의 파멸적 선택을 저지하거나 적어도 보정할 의무를 지게 됩니다. 혹자는 여기에 반대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반대하는 입장에서도 국가가 국민에게 어떠한 길을 제시할 때에는 그것이 적어도 어느 정도는 안전하여야 한다는 점에는 동의할 것입니다.
사법시험제도는 결국 이러한 측면에서 보면, 형식적인 평등을 내세우면서, 국가가 국민에게 아주 큰 리스크를 떠넘기고, 불공정한 경쟁 후에 낙오한 사람들에 대해 '네가 선택한 길이잖아!' 라고 말하며 내치는 제도입니다. (여기서 '왜 불공정한가?' 라는 의문을 가지는 분들은, 최근 20년간 고졸 출신 사법시험 합격자가 과연 몇명인지, 그 사람들이 총 합격자 대비 몇 퍼센트인지 한번 확인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합격자 중 흔히 '부유층'에 속하는 집안의 자녀들이 차지하는 비율과, 서울 상위권 대학 출신자의 비율 또한 확인해 보시기 바랍니다. 사법시험은 아까도 말했듯이 더 이상 공정한 경쟁이 아니고, 이것을 공정하다고 말하는 분들 중 절대다수는 사실 속으로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사법시험을 옹호하기 위해 그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일종의 불편한 진실이라 하겠습니다) 과거에는 분명 정말로 평등한 제도였고 희망의 사다리였지만, 이제는 제도의 본질 자체가 그렇지 않게 변해 버렸습니다.
IV. 로스쿨 제도의 본질과, 그리고 그 나아갈 길에 대하여
법학의 공부는 힘겨운 오래달리기입니다. 물론 로스쿨은 국가에서 운영하는 것은 아니지만, 국가가 법률로 정한 '제도'가 법조인을 꿈꾸는 사람들과 함께 손을 잡고 달리면서, (일정한) 합격 커트라인 시간 내에 목표지점에 도달하도록 옆에서 이끌어 주는 것입니다. 하지만 대신 달려 주는 것은 아닙니다. 이것이 바로 평등한 리스크 분담이고, '기회의 평등'입니다. 즉 현재 로스쿨 제도는 그 본질이 '법조인을 꿈꾸는 사람들의 리스크를 사회가 같이 떠안는 제도'입니다. 희망의 사다리가 있다고 한다면 오히려 바로 이런 것이겠지요.
로스쿨 제도를 비판하는 사람들의 논지는 물론 여러가지 있지만 결국 그 로스쿨이라는 '트랙'에 1) 오르는 비용이 너무 높다, 2) 달릴 준비가 안 되어 있는 자가 편법으로 올라온다 이 두가지로 압축됩니다. 로스쿨 제도를 옹호하는 사람들은 비용에 대해서는 주로 장학금으로 커버된다고 반론합니다.
사실 저는 저 반론이 타당하다고 생각합니다만 다소 부족하다고도 생각하고, 상당히 많은 분들도 그렇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맞습니다. 비용은 앞으로 더욱 줄여 나가야 합니다. 등록금을 낮춰서 더 많은 사람들이 기회를 제공받아야 합니다. 장학금 비율도 높여서 가난한 학생들이 누구나 법조인이 될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더 충실하게 '실질적 기회의 평등'을 구현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비용의 문제는 국가에서 나섬으로써 해결할 수도 있고, 각 대학들이 재정건전성을 높이고 쓸데없는 비용을 지출하지 않음으로써 해결할 수도 있고, 여튼 가능성이 무궁무진합니다. 사회의 중요한 인재를 양성하는 로스쿨에 왜 '반값 등록금'이 실현되어서는 안됩니까? 당연히 되어야 합니다.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장학 제도도 더욱 늘려야 합니다.
그리고 공정성에 대해서는, 그런 '편법'으로 올라와서 달리는 사람들은 결국 중간에 달리기를 포기하고 나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트랙 자체가 경사가 높아서 결코 쉽지 않으니까요. 이미 작년부터 학사엄정화 정책이 시행되어 공부를 게을리하거나 아예 준비가 안된 학생들은 학사경고를 피할 수 없으므로 결국 학교에서 쫓겨나게 되어 있으며, 로스쿨의 중간시험과 기말시험은 정말로 부정이 개입될 여지가 사실상 없을 정도로 학생들이 민감하게 반응하기 때문에 (조금의 부정이라도 개입되었다는 정황이 포착되면 학생들이 '정말로' 들고일어날 준비가 언제든지 되어있습니다) 더욱 버틸 수 있을 리가 없습니다. 입학 또한 객관적 평가지표를 좀더 강화하면 충분히 공정해질 수 있으며, 마지막으로 변호사시험의 필터링 기능 또한 무시할 수 없습니다. (변호사시험의 점수를 공개함으로써 공정성을 더 확보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는 하지만, 이것이 과연 궁극적으로 이익인지 손해인지는 저로서는 확답하기 어렵습니다)
V. 결어
평등은 정의와 굉장히 밀접한 관계를 가집니다. 정의란 주로 '같은 것을 같게, 다른 것을 다르게 대우하는 것' 이라고 일컬어지는데, 이 안에는 결국 평등의 가치가 매우 진하게 녹아 있습니다. 형식적 평등을 내세우며 거짓된 희망을 제시하는 국가는 정의롭지 못한 것입니다. 우리가 복지를 사회정의의 한 실현수단으로 취급하는 것도 바로 평등과 정의가 직결되기 때문입니다. 로스쿨 제도는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실질적으로' 평등한 제도이며, 앞으로 조금 더 개선되고 정착된다면 더욱 정의롭고 평등한 법조계를 구축하는 데 아주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할 것입니다. 이제는 철봉을 치울 때가 되었습니다.
긴 글 읽어 주셔서 고맙습니다.
좋은 밤 되십시오.
●?Who's Gomdolius
- ?
-
?
짝짝짝
준비를 계획하지 않는 국가가 스스로 준비가 되어 오라고 하는 무책임한, 평등의 원칙에 벗어나는 일들을 하고 있죠
수능, 사법시험, 공무원 등의 국가 고사는 다 똑같은 거 같아요
현실적으로 바꾸어 달라고 하는데 왜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어주지 않은 걸까요?
목소리를 들어주는 나라에 살고 싶습니다
유승준은 안되고 황교안은 되는 이 나라......... 어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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